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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자들이 글 못쓰게 만드는 방법 / 조애나 러스

by 허니꿀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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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나 러스는 왜 여성은 오래도록 문학의 중심에 놓이지 못했는지, 문학 비평가들이 어떻게 여성의 글을 억압하고 고립시켜 왔는지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세상은 어떻게 여자들이 글을 못쓰게 만들었을까. 러스는 여성 작품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데 사용된 총 11가지 방법에 대해 적어놓았다.

 

말 잘하는 여자

흔히 여성들이 말을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일면에서는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이라도 잘하게 되었던 것 아닐까. 글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말로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특화되었던 것이다.

 

문단에서의 여성의 지위와은 별개로, 일상생활에서는 말을 잘하는 여자가 생활하기에 더 편리하다. 모르는 길을 물어볼 때도 그렇고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하거나 주문을 할 때도 여성의 말 잘하는 능력이 빛을 발한다. 

물론 옛날부터 말 잘하는 남성도 존재했다. 흔히 정치인들이나 웅변가들은 달변가라고 했다. 그들은 말로 사람들을 설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말하기 외에 글쓰기라는 또 다른 도구가 있었던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에게는 말하기만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오랜 기간동안 여성들은 글을 배울 기회도, 글을 써서 인정받을 기회도 주어지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문학계는 남성 위주의 철옹성을 쌓았다. 그렇게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들이 생겨났다.

 

1. 금지하기 (자연스럽게 금지당하기)

 

여자들이 맞닥들이는 제일 첫 번째 관문은 편견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가족 구성원 중 아픈 사람이 있다면 여성에게 먼저 돌보기를 바란다. 그 외에 여러 집안일도 여성의 몫이다. 가정에 봉사하고 남편에게 헌신하며 자녀를 잘 돌봐야 한다. 다른 일보다 이 일들이 여인의 미덕이요 여자의 삶이라는 편견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은 결코 혼자서 성장하지 않는다. 부모나 다른 누군가의 손이 가야 하고, 도움이 있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개중에 몇몇은 부모의 관심이 없이도 혼자서 잘 컸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 마련이다.

이때, 일반적으로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존재, 여성은 아이를 돌보는 존재로 나뉜다.

매체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으로 남자가 방이나 서재에 들어가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다른 작업을 하는 건 일반적으로 보이고, 여자가 가사 일을 내팽개치고 방으로 들어가 같은 작업을 한다면, 분명 집안꼴이 이게 뭐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모유수유를 하지 않으면 부족한 엄마,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엄마로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를 넘어 남편에게 혹은 시부모님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아이 한 명을 키울 때 가족 구성원 적어도 2대 혹은 3대 이상의 가족 구성원이 모여 있는 곳에서 키웠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게 있더라도 위에서 알려주는 대로 그대로 키우면 됐고 아이를 돌보는 일도 적당히 나눌 수 있었다.

 

육아의 힘듦을 잘 말해주는 일화 하나로 남편이 저녁에 일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날도 육아가 힘들었던 부인의 얼굴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남편은 슬그머니 집안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낀다.

 

'와 남자 정말 불쌍하다, 왜 저렇게 사냐'라고 느낀다면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육아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혹은 지금 오십대 정도 되는 기성세대에서는 이게 일반적이었다. 당연히 아이는 엄마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에게 물어보라. 남편이 저녁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해주는 게 좋은지 아니면 자기 대신 아이랑 시간을 보내주는 게 좋은지. 단순히 아이와 아빠의 유대감을 키우고, 그게 아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그런 육아 서적에 적혀 있는 내용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엄마들은 한시라도 빨리 육퇴를 하고 싶어 한다.  육퇴란 육아 퇴근의 준말로,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느라 힘들었던 시간에서 벗어나는 걸 말한다.


그럼 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해서 아이 낳은 거 아닌가. 혹은 밖에서 일하는 남자는 힘들지 않은가. 그럼 여자가 나가서 남자가 버는 만큼 벌면 되잖아. 여성이, 그것도 출산을 하느라 경력 단절된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남성만큼의 돈을 버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히 유리 천장이란 게 존재한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특히 공무원 쪽에 여성 할당제로 말이 많다. 경찰관이나 소방관, 그리고 교사까지. 남성 공무원들에게서는 역차별 발언이 나오고 있다. 왜 힘든 일, 현장 일은 남자가 도맡아 하고 여성은 내근직 이라거나 덜 힘든 일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과연 극한 상황에서 남성과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범죄자가 남성 경찰관이 아닌 여성 경찰관을 깔보거나 쉽게 생각하진 않을까. => 역차별 논란과 유리천장 어느 쪽이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가.)

 

러스가 찾은 여성 작가들이 놓였던 현실

 

중산층 여성 작가들은 단순히 하루를 보내는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을 돌보는 데 써야 했다. 아이를 돌보거나 식사를 준비하거나 부모님을 봉양하는 의무를 강요당해야 했다. 그중에 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잠깐잠깐 짬날 때 도둑 글쓰기를 하고 밤늦게서야 지쳐버린 정신으로 겨우 글을 쓸 수 있었다고. 그리고  남편은 시간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을 불러 세운다. '여보 차 마실 시간 된 거 아니야'라고. 어디 남편 분이겠는가. 아이는 하루에도 수백 번 정도는 엄마를 찾을 것이다. 심지어 남편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부인이 글을 쓰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지만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다.

나 또한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있고 조금은 바꾸려는 노력을 해보려고도 하지만 결국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19세기 많은 여성 작가들이 평생을 미혼으로 살거나 자녀 없이 살거나 자녀 한 명에 하인을 두고 살았던 것을 보면 여성의 글쓰기가 얼마나 큰 어려움에 맞닥드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엘렌 글래스고는 자신의 첫 소설을 출판사에 가져갔을 때 '당신은 소설가가 되기에는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고 심지어 강간을 당할 뻔했다. 그다음으로 찾아간 출판사에서 들은 말은 책을 낼 생각은 하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나 잘 키우라는 거다. 가장 위대한 여자는 훌륭한 책을 쓴 여자가 아니라 훌륭한 아이를 기른 여자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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