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이라는 부제를 가진 베트남 전쟁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박태균이다. 10여 년간의 연구 끝에 베트남 전쟁이 한국과 세계에 남긴 발자국을 분석하는 책을 썼다.
가장 가혹한 피해자는 억울하게 죽은 베트남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가해자인 군인들 역시 피해자였고, 베트남전 이후에도 트라우마를 앓았다. / p111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은 이념 전쟁이자, 미국의 중국 개입에 대한 두려움, 한국전쟁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함, 남베트남 내에서만 군사작전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결국 미군은 철수한 정쟁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베트남전 파병을 통한 경제적 효과만을 주목하였으나 베트남 전 당시의 이념의 충돌, 다른 나라의 지지를 통해 세워진 정권에 가지는 국민들의 반발심, 독재자의 최후,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하 생각해 볼 점이 많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였지만 베트남 전쟁에서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이념 충돌, 미국, 중국, 소련의 서로 밀고 당기는 외교 관계, 그런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양 측 진영의 대결은 과거 한반도에도 있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이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주었다. 수만 리나 떨어져 있는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막으면 미국의 안보가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다. 막상 전쟁터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정부는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노르망디의, 혹은 인천의 영광도 없었다. 그저 정글에서 살아남기를 기도 할 뿐이었다. /p123
통일 총선거를 하기로 했던 제네바 협의를 깨고 1955년 10월 26일 남베트남 단독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지엠의 정권은 쿠데타 한 방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1955년 선거에서 45만 명의 등록 유권자보다 많은 60만 표를 획득했던 독재자의 최후였다. / 77p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막상 보호하고 있는 정부는 민주적 정부가 아니었다. 경제적 성과나 대중적 지지 면에서 큰 성취가 없었지만 그나마 안정적으로 반공정권을 유지하는 데 만족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월남전 당시 일부 주월 한국군의 잔학 행위를 사과하며 진상조사가 필요할 경우 이에 협조하겠다고 했을 때, 베트남 측이 영 떨떠름해하며 "어차피 우리가 승전국이므로 별로 개의치 않으며, 경제협력 얘기나 하자"고 한 것은 외국군 못지않게 베트콩의 잔학 행위도 상당했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있다. / 나무 위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는 국내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베트남 파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수 있었기 때문에 철저한 보도 통제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p98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제는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풀어야 하는 난제이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일화를 생각해보면 그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그 동맹국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
- 미국이 명분도 없는 전쟁에 개입하여 잘못된 전략으로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
-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부도덕한 문제로 인해 세계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는 점.
- 미국과 그 동맹국에 맞서서 베트남 사람들이 잘 싸웠다는 점.
미군은 갈팡질팡했다. 갈수록 미군과 동맹군의 숫자를 늘려가긴 했지만, 북으로 직접 진격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다면 중공군이 북베트남군을 돕기 위해 참전하고 한국전쟁과 같은 결과를 일으킬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정글에서 더위와 벌레와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 고통받던 미군들은 가면 갈수록 도박, 마약, 매춘 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진군하여 적군을 섬멸하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그저 남베트남군을 도와 그들이 점령한 곳을 지키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정글에서 작전을 수행한다는 점, 어디서 적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점은 항상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고 사기 저하를 불러왔다.
또한 1차 세계 대전 때는, 이념과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치는 걸 영광으로 여겼다. 그 증거로 고위층이나 중산층의 자녀들도 많이 참전하여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 당시에 참전 미군들은 대부분 하층민의 자녀였다. 웨이터, 공장 노동자, 트럭 운전사, 소방관, 목수, 영세 상인, 경찰관, 광부, 농부의 자녀가 전체 미군의 80% 였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름알데히드가 뭐야? (0) | 2022.07.24 |
---|---|
베트남 전쟁 (박태균 지음) 용어정리 (0) | 2022.07.24 |
LG 에어컨 멈춤, Od 에러 1만원대로 해결 (0) | 2022.07.22 |
돈버는 걷기 앱 + 자동 걷기 기계 비교 (0) | 2022.07.21 |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 아이 그림 애니메이션 (0) | 2022.07.21 |
댓글